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개혁사상가 허균, 그는 왜 천지간 괴물이 되었나 상세내용(대체 텍스트)
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개혁사상가 허균, 그는 왜 천지간 괴물이 되었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죄인 수레에 매달아...
조선의 문장가이자 개혁사상가인 허균!
그가 역모의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된 지 400년이 되었다.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서자여서 저자인 허균도 서얼로 짐작하기 쉽지만, 그는 당대 최고의 금수저였다.
대제학과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아버지, 일찍이 과거 급제하여 동인을 이끈 두 형, 조선 최고 여류시인 누이 허난설헌이 있었고,
허균은 26세 과거 급제하고 중시에서 장원을 차지한 수재였다.
허균은 1608년 공주 목사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서자인 친구 심우영과 이재연에게 편지를 보냈다.
허균 : 땟거리를 걱정하는 친구들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구나. 친구들이 공주에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공주 관아 식객이 된 심우영은 계축옥사의 발단이 된 강변칠우 사건의 주모자 중 한 사람이었다.
계축옥사는 1613년 대북파가 영창대군 및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임
1613년, 역모로 비화되는 강변칠우 사건이 발생했다.
포졸 : 강도 살인 사건을 벌인 서자 7명을 체포하라!
이이첨 : 대북파 입지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이 사건을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한 역모로 조작하여야겠다.
허균은 이 사건이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을 직감하고 대북파 핵심 인물 이이첨을 찾아갔다.
강변칠우 사건은 명문가 서자 7명(강변칠우)이 문경새재를 넘는 은상을 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임
허균은 대북파 전향 3년 만에 형조판서에 오른데 이어 정2품인 좌참찬으로 승진했고, 이에 구세력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정쟁에서 허균에게 패한 영의정 기자헌의 아들 기준격 : 허균은 공주 목사 때 심우영을 식객으로 불러들였으며...
고변에 대한 허균의 반박 상소와 국문을 요구하는 상소가 반복되던 중 1618년 8월 10일 남대문에 벽서가 붙었다.
선비 1 :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 대장군인 정아무개가 온다.'는 벽서를 보았소?
선비 2 : 허균의 심복인 현응민이 붙인 것으로 밝혀졌다던데...
허균은 끝까지 역모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벽서가 붙은지 14일 만에 능지처참되었다.
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천재 허균!
400주기를 맞아 그가 하루속히 복권되어 그의 민본사상이 재조명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