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최근 포항서 가스분출 572년 전에도 이 일대 탐사 상세내용(대체 텍스트)
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 e-기록속으로 2017년 4월호 -
최근 포항서 가스분출 572년 전에도 이 일대 탐사
깊이 파서 살펴보라. <세종>
경상북도 포항 인근 지역의 가스분출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국사기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진평왕 31년, 609년)
경주 모지악에서 정월 쯤 땅에 불이나 같은 해 10월 15일에서야 꺼졌음.
삼국사기 (태종 4년, 657년)
7월에 경주 토함산 동쪽 땅에서 불이났는데, 무려 3년이나 탔다.
기록상으로는 땅에서 불이 나는 현상은 이후 800년여 년간 나타나지 않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부쩍 늘었다.
세종 27년 1445년에는 이 일대에 대한 탐사도 있었다.
땅이 타는 곳에 석유황이 난다고 하니 경이 깊이 파서 잘 살펴보고 아뢰라.
*영해부 남쪽 산록에 *병진년 2월부터 땅에 불이 나 *임술년 3월에서야 꺼져... 올해 2월 6일 이곳에 또 다시 지소가 발생하여... 낮에는 푸른 연기가 나고 밤에는 불꽃이 일며, 냄새는 석유황과 같고 비가 와도 꺼지지 않습니다.
*영해부 :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병진년: 1436년 임술년 : 1442년
이후, 별다른 보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석유황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후에도 세종은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함길도 경성에서도 땅에 불이 났다고 들었는데 이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거라.
소신이 근무 할 때도 물을 부어 꺼지지 않는 불이 수년씩 계속되었으며 5진에서도 여러차례 땅에 불이 났었습니다.
경상도 민간에서는 땅에 불이 나는 곳에서 석유황이 난다 하옵고...
이에, 임금은 구슬아치와 관노 10여명을 보내 깊이 파내어 시험하도록 했다.
그러나 세종은 끝내 석유황 채취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며, 성종 때에 이르러 석유황 채취와 가공에 성공했다.
1477년 2월 3일 <성종>
사섬부정 윤사하와 선공첨정 임중은 공주의 집을 건축하는데 사용할 모래를 충정도에 가서 채취해 오거라.
며칠후
신 임중은 명을 받들어 목재채취를 하러 가던 중 청풍군에서 석유황을 발견하여 채취해 보내 드립니다.
두 달여가 지난 4월 2일, 청풍군에서 채취한 석유황으로 화약제조에도 성공했다.
1445년 세종 27년, 지소가 있었던 영해부에서 38여년이 지난 1483년,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경상도 관찰사 김자정>
영해부에서 길이 7척, 넓이 27척 남짓한 땅에서 불이 난 낮에는 여기가 오르고 밤에는 화강이 있어...
천화가 내려와 불지른 것이라면 진실로 큰 재이이다.
...백성들이 놀라기 충분하니 사람을 보내 살펴보라.
이에 승정원은 내관 이효지와 겸사복 황형을 파견하여 조사하게 했다.
중종 26년, 1531년 6월 11일에는 한달여전 황해도 연안부에서 발생한 지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성종 조 때도 영해부에서 지화가 있어,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했다. 그때 80여세 된 현지 노인이 '세종조 신묘년에도 이곳에 지화가 나 3년여 만에 꺼졌다'고 했는데 진위를 알 수 없으니 국사에 실린 내용을 조사하여 아뢰거라.
승정원에서 조사에 착수하여, 성종 조 때 기록은 찾았으나, 세종 조의 일은 찾지 못했다고 아뢰었다.
실제 실록에도 지화가 발생했던 기록은 있안, 노인의 진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으로만 보면...
<역사속 가스분출>
1. 가장 오랫동안 계속된 가스분출
가. 시기 : 조선 세종 조, 1436년 2월~1442년 3월
나. 지역 : 경상도 영해부
2. 가장 규모가 큰 가스분출
가. 시기 : 조선 중종 조, 1530년 11월 경
나. 지역 : 황해도 연안부 다정리
다. 규모 : 넓이가 1백여 척, 길이가 2백여 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 국토에 대한 자조적인 한마디이다.
4차 산업시대에 접어든 요즘도 탄소에너지가 여전히 유용하지만, 축적된 기록과 창의적인 생각이 이보다 더 유용한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