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힘으로 독립을 외치다 상세내용(대체 텍스트)
민중의 힘으로 독립을 외치다
판결문을 통해 본 3.1 운동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29인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후, 만세운동은 서울을 벗어나 전국각지로 확산되어 여러가지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민중들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횃불을 들고, 횃불독립만세운동을 하기도 하고,
강가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천안 병천에서는..
유관순 : 서울에서 3월 1일에 독립선언을 했대요. 우리도 독립만세운동을 해야겠어요.
부친 유중권과 숙부 유중무 : 그래,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아우내 장터에서 하도록 하자!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대한독립' 큰 깃발을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군중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대한독립만세! 우리 함께 독립만세를 외칩시다! 만세!
장터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눠주며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하였습니다.
헌병들이 출동하여 강제해산을 명했으나, 이에 불응하자 군중들을 향해 발포하기도 하였습니다.
끝까지 독립만세를 부르는 사람, 황급히 몸을 피하는 사람, 총을 맞아 쓰러진 사람으로 장터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조선 사람이면서 무엇 때문에 왜놈의 헌병보조원을 하느냐?
우리도 죽여라!
대한독립만세!
김교선, 한동규 등은 순국자 시신을 헌병주재소로 운구하고 그 앞에서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는 등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판결문은 일제에 의해 남겨진 아픈 기록이지만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독립운동 판결문은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