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남는 타임머신> 인권의 날, 우리나라에는 천년 전에도 있었다. 상세내용(대체 텍스트)
기록으로 남는 타임머신
인권의 날, 우리나라에는 천년 전에도 있었다.
평등 존엄 자유
1948년 12월 10일 UN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여, 세계인권선언일(12.10.)은 올해로 69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에서는 옛적부터 음력 1월 7일을 인일로 정해 음식을 나누고, 선물도 주고 받으며 편히 쉬도록 했다.
오늘은 모든 일을 간단히 하고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
우리나라에서 인일이 실록에 처음 나온 것은 1393년이었다.
세종은 지나친 선물, 허례허식 때문에 인일을 폐지하려고 했지만 3년 안에 인일에 바치던 잡물을 없애도록 하라!
수백년 간의 풍습이었던지라 2년 만에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지금부터는 인일에 진성하는 물건을 금, 은으로 장식한 것은 쓰지 말라
그 후에도 인일은 몇차례 폐지와 재개를 반복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인일
난리 후 선비들이 흩어져 인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비를 모으는 데는 과거만한 것이 없으니 인일제를 다시 시행해야겠습니다.
이때부터 인일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과거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인일제에는 유난히 사고가 많았다.
왜 1월 7일에 시행해야 하는 시험을 아무말 없이 17일이나 미루는 것이오?
인조 때는 성균관 관원이 과거 시험을 감독해서 반드시 대신 이상 감독하기로 한 규정을 위반하였고, 숙종때는 시험을 무단으로 연기한 일도 있었으며, 부정시험도 만연했다.
영조 때에는 인일제에 또한 다른 해프닝도 있었다.
강을 해보거라
어버버
경국대전에 따르면...
결국 수석이었으니 강을 못한 조중첨은 재시험에, 강을 잘한 차석, 이익선은 장원급제를 하였다.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 후 조중첨은 한직을 전전했고 이익선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대사간(정3품)까지 올랐다.
세계인권선언(1948) 당시 우리나라는 비록 인권 암흑기였지만, 이미 천년 전부터 '인일'이 존재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는 조금씩 변하기도 했지만, '인권 존중'이라는 그 시작의 의미가 오롯이 실현되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