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비정규직(?) 9년 대장금 임금이 직접 정규직 지시 상세내용(대체 텍스트)
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 e-기록속으로 2017년 6월호 -
비정규직(?) 9년 대장금 임금이 직접 정규직 지시
기록일보
文대통령 "공공부분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 선언"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현장방문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들었고...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서리하여 일자리 정책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비정규직 문제는 어려운 과제엿던 것 같다.
전체아 : 상근직으로 규정된 급료 전액을 받는 정규직
반체아 : 일이 있을 때만 입궐하여 급료 반액을 받는 비정규직
요즘 전체아에 빈자리가 발생해도 이를 보고하지 않는다. 전체아 전환을 아뢰기 어려워 그런 것 같은대 장금은 무리 중에서 의술이 나으니 전체아를 주어라.
감사하옵니다.
1524년 12월 15일, 중종은 장금의 정규직 전환을 직접 지시했다.
장금이의 정규직 전환 9년 전인 1515년 3월 21일
장금에게 장경왕후 대고의 죄를 물어 벌하기를 간청하옵니다.
의녀 장금은 왕후의 호산에 공이 있어 큰 상을 받아야 하나, 마침 대가고 있어 받지 못했다. 상을 베풀지 모할지언정 형장을 가할 수 없어 장형을 속바치게 한 것이다.
이때 이미 중종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장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정규직 의녀로 근무해 왔었던것으로 보인다.
내의녀 대장금은 중종 재위 말년에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는데
1544년 10월 25일
상께서 어제 삼경에 잠이 들었고 오경에 잠깐 깨어 소변을 보았으나, 대변은 3일째 불통이옵니다.
내 증세는 장금이가 잘 안다.
내의원 제조조차 임금의 증상과 처방을 장금에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중종은 변비 7일째인 10월 23일 배변에 성공했는데, 이날의 기록이 실록에 나타난 대장금의 마지막 흔적이다.
장금에게 듣도록 하여라.
하기가 통하여 기분이 매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호전은 일시적이었던 것 같다.
중종은 22일 만인 11월 15일 57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입신양명한 인물로는 장영실도 빼 놓을 수 없다.
사직 장영실을 별좌에 임용하여라.
어찌 기생의 소생이 별좌에 임용될 수 있겠습니까? 그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1422년, 세종은 대부분의 신료들이 거세게 반발해 뜻을 접어야 했지만, 10년이 지난 1432년 1월 장영실의 별좌 임용을 결국 관철시켰다.
장영실은 공교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태종이 보호하셨고 나 또한 아끼니 별좌 장영실을 정 4품 호군으로 승진시코도록 하여라.
장영실은 사직에서 1년 9개월여 만에 별좌를 거쳐 정 4품 무관이 되었다.
이후 장영실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1438년 1월 대호군에 올랐지만, 음모로 짐작되는 안여 사고로 1442년 4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자 태생으로 정1품에 오른 허준도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1591년 3월
허준을 정3품 통정대부에 승진시키도록 하여라
허준은 중인 출신으로 종3품이 한계입니다. 허준의 당상관 발탁은 신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옵니다.
이후 승급이 있을 때마다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1605년 1월 성공신화의 정점인 정1품에 제수되었으나, 생전에는 오르지 못하다가 사후에 추증되었다.
요즘의 다문화 가정인 귀화인 2세가 장군에 오르기도 했다.
여진족 2세 동청례는 성종의 허락으로 무과에 응시하여 473년에 급제했다.
급제 20여년 만인 1493년 습독관에 제수되었으나, 신료들의 반대로 같은 직급에 다른 관직을 받아야 했다.
연산군 즉위 이후 변방의 야인들을 잘 다스린 공로로 1503년 군 고위 지휘관인 위장에 올랐다.
신분과 제도를 극복한 성공신화는 본인이 타고난 재능과 노력도 중요했지만, 위정자의 의지와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 가능했다.
비정규직 해소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새정부의 의지와 공감대가 뜨거운 만큼, 머지않아 실현되리라 믿는다.